3040 words.

정보라

어느 날 물을 내리고 화장실을 막 나오려 할 때였다.

“어머니.”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변기 속에서 머리가 하나 튀어나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어머니.”

그녀는 ‘머리’를 한참동안 가만히 쳐다보았다. 물을 내렸다.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는 사라졌다. 

그녀는 화장실을 나왔다.

며칠 후 화장실에서 그녀는 다시 ‘머리’를 만났다.

“어머니.”

그녀는 다시 물을 내리려 했다. ‘머리’는 황급히 소리쳤다.

“안 돼요, 잠시만, 잠시만….”

그녀는 물을 내리려던 손을 멈추고 변기 속의 ‘머리’를 잠시 들여다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가 아니라 ‘머리처럼 보이는 어떤 것’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크기는 보통 사람 머리의 3분의 2정도. 아무렇게나 빚은 찰흙덩어리 같은 누렇고 희끄무레한 머리통을 헝클어지고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덮고 있었다. 귀는 없었다. 머리카락 아래에는 눈썹도 없이 가로 쭉 찢어져 떴는지 감았는지 모를 두 눈이 있었다. 그 아래 있는 뭉그러진 덩어리가 아마 코인 것 같았다. 입 역시 입술도 없이 그냥 가로로 갈라져 있었다. 그런 입이 뻐끔거리며 그녀를 향해 말을 하고 있었다. 새된 목소리에는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 같은 꼴록꼴록 하는 소리가 섞여 있어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녀는 물었다.

“너는 무엇이냐?”

‘머리’는 대답했다.

“저는 ‘머리’입니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그래, 그건 알겠다. 그런데 왜 내 변기 속에 존재하는 거냐? 그리고 왜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거냐?”

‘머리’는 입술 없는 입을 서투르게 뻐끔거렸다.

“당신이 변기 속에 버리곤 했던 빠진 머리카락과 당신의 배설물과 뒤를 닦은 휴지 등 당신이 변기 속에 버린 것들로 인하여 제가 생겨났기에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녀는 화를 냈다.

“나는 너 같은 것에게 내 변기를 차지할 권리를 준 적이 없다. 너는 나를 어머니라고 하지만 나는 너 같은 걸 만든 적이 없으니 널 없애버릴 사람을 부르기 전에 썩 꺼져라.”

‘머리’는 대답했다.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이제까지처럼 변기 안에 오물을 버려 주시면 그것으로 나머지 몸을 이루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나가서 멀리 떠나 제 힘으로 살아갈 테니 저에게 신경 쓰지 마시고 이제까지처럼 변기를 사용해 주십시오.”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이것은 내 변기니까 당연히 이제까지처럼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너 같은 게 내 변기 안에 숨어 있다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나쁘다. 네가 몸을 이루건 말건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네가 뭘 하건 상관없으니 앞으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머리’는 변기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머리’는 그 후로도 계속 나타났다. 물을 내리고 나면 변기 속에서 살그머니 솟아 나와 손을 씻는 그녀를 멀뚱하니 바라보곤 했다. 그녀가 눈치를 채고 뒤돌아보면 잠시 그녀를 마주 쳐다보았다. 뜬 듯 만 듯한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뭉개진 얼굴에는 무언가 표정을 떠올리려 애쓰는 것 같았지만 그것이 무슨 표정인지는 해석할 수 없었다. 그녀가 물을 내리려고 다가서면 ‘머리’는 재빨리 변기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면 그녀는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고 변기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화장실을 나왔다. 

어느 날, 그녀는 평소처럼 화장실을 쓰고 물을 내리고 손을 씻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뒤에 ‘머리’가 나타났다. 그녀는 손을 씻으며 잠시 거울 속으로 ‘머리’를 바라보았다. ‘머리’도 그녀를 마주 쳐다보았다. 드문드문 덮인 머리카락 아래 보통 때라면 누렇고 희끄무레한 색이어야 할 뭉개진 얼굴 덩어리가 그날따라 이상하게 불그스름했다.

그녀는 생리 중이었다.

그녀는 ‘머리’를 향해 물었다.

“네 색깔이 변한 것은 내 몸의 상태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냐?”

‘머리’는 대답했다.

“어머니의 몸의 상태는 모두 제 모습에 직접 반영됩니다. 이것은 저의 전 존재가 어머니께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속옷을 벗고 생리대를 떼어냈다. 생리혈이 묻은 부분을 ‘머리’의 얼굴에 갖다 대고 그녀는 ‘머리’를 변기 안으로 눌렀다. 물을 내렸다.

‘머리’와 생리대는 소용돌이치는 물에 휩쓸려 검은 구멍 안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손을 씻었다. 그리고 세면대에 토했다. 오래 오래 토하고 나서 그녀는 세면대를 닦아내고 화장실을 나왔다.

변기가 막혔다. 수리공은 생리대를 전리품처럼 꺼내 들고 변기 안에 이물질을 집어넣지 말라고 한참 설교를 하고 돌아갔다. 

그녀는 변기 뚜껑을 항상 닫아 두게 되었다. 일을 보다가도 수시로 변기 속을 확인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변비가 생겼다.

어느 날 그녀는 변기 뚜껑을 닫으려는 순간 재빨리 얼굴을 내미는 ‘머리’의 모습을 보았다. 변기 뚜껑을 집어던지듯 황급히 닫았다. 몇 번이나 물을 내렸다. 화장실을 나오려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변기 뚜껑을 열어보았다. ‘머리’와 눈이 마주쳤다. 물 속에서 그녀를 마주보고 있었다. 주위에는 머리카락이 떠 있었다. 그녀는 다시 변기 뚜껑을 닫았다. 레버를 눌렀지만 물은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알을 스는 것도 아니고 무는 것도 아니면 그냥 두지 그러니.”

가족들은 더 이상 흥미를 갖지 않았다.   

그녀는 될 수 있으면 집에서는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어느 날 그녀는 직장 화장실에서도 ‘머리’를 보았다. 물을 내리고 나와 손을 씻고 있는데 거울에 비친 변기 속에서 ‘머리’가 그 누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날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변비는 점점 심해졌다. 방광염도 생겼다. 의사는 제때 화장실을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일을 보는 아래에서 무언가가 자신의 오물을 받아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녀는 어느 화장실에도 마음놓고 갈 수 없었다. 

방광염과 변비는 좀처럼 낫지 않았다. 

가족들은 직장을 그만둔 김에 결혼을 하라고 했다. 어머니의 권유대로 선을 보았다. 제법 알려진 무역 회사에 다닌다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얌전한 여자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물 외에는 아무 것도 상상할 능력이 없어 보이는, 소박하고 건실한 남자였다. 낯선 이성 앞에서 그녀는 내내 화장실이 불안해 어쩔 줄 몰랐다. 남자는 그런 그녀를 보며 말했다. 수줍음 잘 타는 순진하고 얌전한 여성이 제 이상형이었습니다. 요즘 세상에 남자 앞에서 수줍어하는 여자는 찾기 힘들더군요. 남자 쪽에서 강행하다시피 석 달 후에 약혼을 하고 또 석 달이 지나자 결혼을 했다. 

결혼은 했지만 그녀는 신혼여행이 걱정되었다. 여행하는 동안은 다행히도 ‘머리’와 마주치지 않았다. 신혼집으로 이사하면서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이 화장실과 변기였다. 아무 것도 없었다. 새 집에서 새 생활을 하게 되면서 방광염과 변비는 많이 나아졌다. 아무 기복 없이 평범한,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생활을 꾸려가면서 그녀는 그런 대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새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쁜 와중에 그녀는 ‘머리’에 대해서는 차츰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얼마 후 아이가 생겼다. 그녀는 ‘머리’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버렸다.

‘머리’가 다시 나타난 것은 아이가 태어나고도 얼마 지난 후였다. 그녀는 아이를 목욕시키고 있었다.

“어머니.”

그녀는 아이를 물 속에 빠뜨릴 뻔했다.

‘머리’는 조금 더 커져서 평균적인 사람 머리 만한 크기로 자라 있었다. 아무렇게나 빚은 찰흙덩어리처럼 보이는 누르스름하고 희끄무레한 몰골이나 윤곽이 뭉개진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눈은 조금 커져서 깜빡거리는 것이 보였고 입술 비슷한 것도 불거져 있었다. 얼굴 옆에는 아무렇게나 붙여 놓은 덩어리 같은 귀가 생겨 있었고 윤곽이 불분명한 턱 아래 목이 되려는 듯한 짧은 덩어리가 새로 자라나 있었다.

“어머니, 그 아이는 어머니의 아이인가요?”

그녀는 놀라 물었다.

“어떻게 또다시 내 앞에 나타나게 된 것이냐? 여기로 누가 안내해 주었지?”

‘머리’는 대답했다.

“어머니의 배설물은 또한 저의 일부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머니께서 어디에 계시든 저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머리’의 말은 그녀의 귀에 매우 거슬렸다. 그녀는 쏘아붙였다.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또 나타나서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이냐? 이 아이가 누구의 아이이건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냐? 그래, 내 아이다. 나를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세상에서 이 아이뿐이란 말이다. 꺼져 버려라. 사라지란 말이다.”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머리’는 말했다.

“그 아이와 태어난 경로는 다르지만 저 역시 어머니의 피조물입니다.”

“난 너 같은 걸 만든 적이 없다고 했지 않느냐? 없어지라고 했다. 안 그러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널 찾아내서 없애버리고 말겠다!”

그녀는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렸다. 그리고 우는 아이를 달래며 남은 비누거품을 닦아주었다. 

‘머리’는 한 번 나타나자 끈질기게 다시 출몰하기 시작했다. 물을 내리고 손을 씻고 있으면 뒤에서 쳐다보는 눈길을 느낄 수 있었다. 곁눈질로 볼 때는 누렇고 희끄무레한 것이 보이다가 뒤를 돌아보면 재빨리 사라졌다. 그럴 때면 변기 안에는 정체 모를 머리카락이 몇 가닥 떠 있었다.

변비와 방광염이 재발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아이가 걱정되었다. ‘머리’가 아이를 질투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에게 해꼬지를 하려는 것이 아닐까, 아니, 아이가 ‘머리’를 보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할 때마다 불안해졌다.

‘머리’를 없애버려야 한다. 그녀는 결심했다. 

그녀는 화장실에 갔다. 일을 보고 물을 내렸다. 손을 씻으면서 ‘머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변기 속에서 누렇고 희끄무레한 것이 떠올랐을 때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할 말이 있다.”

손을 다 씻고 나서 그녀는 변기 앞에 ‘머리’와 얼굴을 마주하고 쪼그리고 앉았다. 

“너는….”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머리’는 기다렸다. 

그녀는 갑자기 손을 뻗어 ‘머리’를 움켜쥐었다. 간단히 변기 안에서 뽑아내어 비닐에 쌌다.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는 마음 가볍게 일상의 생활로 돌아갔다.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와 함께 화장실에 있었다. 아이는 제법 자라 이제 대소변 가리기를 배울 나이가 되어 있었다. 옷을 내리고, 변기에 앉아 일을 보고, 뒤를 닦고, 옷을 다시 입고, 물을 내리고 손을 씻는 과정을 하나 하나 일러주면, 아이는 특별히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서 곧잘 해냈다. 하지만 키가 닿지 않아서 세면대에 안아 올려 손을 씻어주어야 했다. 그 때 변기 안에서 누렇고 희끄무레한, 낯익은 물체가 나타났다.

“어머니.”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머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이의 손에서 비누거품을 마저 씻어주고 수건으로 손을 말린 다음 화장실 밖으로 내보냈다.

“어머니.”

“어떻게 된 거냐? 여긴 어떻게 돌아왔지?”

‘머리’는 입꼬리를 기묘하게 말아 올렸다.

“미화원에게 부탁해서 변기 속에 버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을 내렸다.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는 소용돌이에 휩쓸려 검은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화장실 밖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가 궁금해했다.

“그건 ‘머리’란다. 또 보거든 물을 내리면 돼.”

그녀는 일러주었다.

‘머리’는 아이가 있는 앞에 나타나 뻔뻔스럽게 자신을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머리’를 완전히 없애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를 변기에서 뽑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비닐 봉지에 넣은 ‘머리’를 쓰레기통에 버리려다 그녀는 망설였다. ‘머리’는 말을 할 수가 있었다. 그냥 버리면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서 지난번처럼 돌아올 지도 몰랐다. 말을 못 하게 만들어서 버려야 했다. 

그녀는 ‘머리’를 작은 통에 담아 베란다의 햇볕 잘 드는 곳에 내놓았다. 수분과 오물을 받지 못하면 그곳에서 말라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방법은 알 수도 없었거니와 알고 싶지도, 시도해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남편이나 아이가 ‘머리’ 통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조심했다. 남편은 베란다에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머리’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말을 시켜보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심하게 야단치고 ‘머리’ 통을 숨겼다.    

남편이 휴가를 받았다. 며칠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집에 돌아와 그녀는 화장실에 갔다. 손을 씻고 있는데 뒤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녀는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변기 뚜껑을 내리치듯 닫고 물을 내렸다. 

그녀는 아이를 닦달했다. 

“네가 그랬지? 엄마가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아이는 울었다. 남편이 중재하러 왔다.

“아, 그 통에 들어 있던 거? 변기에 넣어 달라고 해서 내가 넣었는데. 왜,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그녀는 자초지종을 하소연했다. 

“뭐, 별거 아니네. 그냥 내버려둬요. 기어 나와서 집안을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알을 까는 것도 아니잖아?”

남편은 태평했다.

그녀는 꿈을 꾸었다. 타일을 바른 커다란 흰 방이었다. 갑자기 뒤에서 ‘머리’가 솟아 나왔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다시 다른 쪽에서 솟아 나왔다. 사방에서 ‘머리’가 튀어나왔다. 아이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즐거워했다. 

“머리! 머리!”

그녀는 옆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남편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뭐, 그냥 내버려둬요. 별 것도 아니잖아?”

그 말은 합창이 되어 벽을 울렸다. 내버려둬요. 별 거 아니잖아. 내버려둬요. 별 거 아니잖아. 

물 내리는 손잡이는 천장 가까이 있었다. 그녀는 힘겹게 기어올라가서 레버를 눌렀다. 물이 내려가면서 남편과 아이와 ‘머리’와 함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여전히 즐거워하는 아이와 심드렁하게 신문을 읽고 있는 남편과 함께 그녀는 검은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녀는 아이를 꼭 껴안고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쳤다. 그 때 낯익은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어머니.”

그녀는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의 작은 몸뚱어리, 가냘픈 목 위에 거대한 ‘머리’가 올라앉아 있었다.     

그녀는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비틀 비틀 화장실로 갔다. 변기 앞에 주저앉아 그 티 하나 없는 순백의 물체와 그 안에 고인 맑은 물, 그리고 그것들에 가려진 검은 구멍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 있을 존재와 그 구멍이 이어지는 곳을 상상하면서.

그러나 한 번 말려 죽이려 한 뒤로 ‘머리’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머리’가 등장하는 악몽을 꾸지도 않게 되었다. 그녀는 조용히 남편과 아이를 위해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쇼핑을 하며 아무 특징도 없는 평화로운 날들에 파묻혔다. 남편은 남들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조직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각별히 자상하거나 가정적인 남편은 아니었지만 아이나 그녀의 생일이면 케익을 사들고 와서 촛불을 세워 주기도 하는 남자였다. 아이도 남들처럼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중학교를 나와서 고등학생이 되었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다. 예쁘장했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고 연예인을 좋아하고 얼굴에 난 여드름 때문에 고민하는 고만고만한 고등학생이었다.

“아침 먹어, 늦겠다.”

“엄마, 내 교복 넥타이 못 봤어요?”

“네 방 문고리에 걸어 놨어.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응. 근데 엄마, 나 어제 변기 속에서 사람 머리 봤다.”

“그래? 어떻게 했는데?”

“물 내리니까 없어지던데?”

“잘 했어. 국 더 줄까?”

“아뇨. 엄마, 근데 나 그 머리 전에도 많이 봤다. 그것 없애 버릴 수 없을까? 나 너무 싫은데.”    

“신경 쓰지 마, 물 내리면 되잖아. 다 먹었어?”

“응. 다녀올게요.”

“도시락 가져가지?”

“응. 엄마 안녕.”

“그래, 잘 다녀와.”

문이 닫혔다.

신경 쓰지 마. 

별 거 아니잖아. 

그녀는 그릇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이는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에서 눈치 채지 못했던 주름살과 늘어지고 거칠어진 피부를 발견했다. 그녀가 준 립스틱이 썩 잘 어울리는 아이의 얼굴은 이제 아이가 아닌 여자의 얼굴이었다. 그 익숙한 낯선 얼굴에서 그녀는 젊은 시절 자신의 윤곽을 그대로 발견하고 놀라움과 대견함과 사랑과 질투를 동시에 느꼈다. 아이가 긴 머리에 스트레이트 파마를 하고 보라색 물을 들인 날 그녀는 혼자 거울 앞에 서서 꼬불꼬불하게 누른 ‘아줌마 파마’를 하고 검은 색으로 물을 들인 자신의 머리를 몰래 만져보았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남편은 중견 간부로 올라가 일에 치여 살았고 아이는 아이대로 바빠 해 지기 전에 식구가 다 모이는 날은 거의 없었다. 때때로 남편이 일찍 들어와 둘만 호젓하게 있는 날도 있었으나 따로 불같은 연애를 한 것도 아니니 오순도순 나눌 추억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데면데면하게 평생 살다가 다 늦어서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말없이 함께 저녁을 먹고 말없이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가 남편은 먼저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그러면 그녀는 혼자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아이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도, 남편이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도, 가족들이 모두 잠든 후에도 그녀는 혼자 애국가가 울릴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았다.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움직이는 화면에 집중하면서 마음 한구석에 언제나 자리잡고 있는 공간을 조금이나마 줄여 보기 위해서였다. 텅 빈 듯하기도 하고 꽉 찬 듯 하기도 하고 쓰린 듯 저린 듯 하기도 한 그 야릇한 공간은 잠시라도 잊어버리고 있으면 이내 더럭 커져서 그녀를 점령하곤 했다. 그래서 그녀는 텔레비전을 보았다. 의미 없이 움직이는 화면을 보면서 마음을 비우고 머릿속을 비웠다. 그러나 생각의 샘은 하염없어서 퍼내고 또 퍼내도 다시 흘러나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녀는 화장실에 갔다.

언제나처럼 그녀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고 언제나처럼 집에 혼자 있었기 때문이었다. 볼일을 본 그녀는 습관대로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렸다. 손을 씻다가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늘어진 눈꺼풀과 주름살과 거칠어진 피부를 보았다. 조금씩 다시 자라기 시작하는 흰머리를 보았다. 조만간 새로 염색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다가 그녀는 거울 속에서 변기 뚜껑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달각.

물에 젖은 손이 안쪽으로부터 변기 뚜껑을 밀어 올렸다. 뚜껑이 열렸다. 물에 젖은 손이 또 하나 나왔다. 두 개의 손이 변기 가장자리를 잡았다.

이어 그녀는 거울 안의 변기 속에서 사람의 머리, 물에 젖은 숱 많고 검은 머리카락에 덮인 뒤통수가 미끄러지듯이 솟아 나오는 것을 보았다. 

정교한 손은 가늘고 긴 손가락을 펼쳐 변기 가장자리를 꽉 붙잡고 힘차게 몸을 밀어냈다. 골격이 섬세한 좁은 어깨와 그 어깨로부터 우아한 곡선으로 이어지는 길고 가느다란 팔이 나왔다. 그와 함께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진 매끄러운 등과 매혹적인 곡선을 그리며 잘록 들어간 가느다란 허리, 그 아래 볼록하게 솟은 희고 풍만한 엉덩이, 그리고 건강한 근육이 부드러운 곡선을 흘리며 무릎으로 이어지는 단단한 허벅다리가 나타났다. 한쪽 허벅다리가 솟아오르더니 변기 가장자리에 발을 걸쳤다. 다리는 희고 길고 날씬하고 매끄러웠다. 적당히 살이 오른 장딴지는 힘주어 발을 걸치느라 근육이 불룩 솟아 있었고 발목은 가늘고 날씬했다. 나머지 한쪽 다리가 나오더니 아담하고 발가락이 긴 발이 화장실 바닥에 가뿐하게 내려섰다. 벗은 몸은 온통 물에 젖어 화장실 백열등의 노랗고 뿌연 불빛을 육감적으로 반사하고 있었다. 

그녀는 거울 속을 계속 바라보았다. 변기에서 나온 사람은 거울 속에서 천천히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늙은 얼굴 옆에 선 자신의 젊은 얼굴을 보았다. 젊은 그녀는 늙은 그녀를 향해 미소짓고 있었다. 그녀도 천천히 젊은 자신을 향해 돌아섰다.

이제는 ‘머리’가 아니게 된 ‘머리’는 그녀의 등뒤에 그대로 서 있었다. 젊은 날의 그녀와 똑같은 얼굴이 정말로 그녀를 향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어머니.”

조금 톤이 높은 가성이기는 했지만 꼴록꼴록하는 소리,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이 내는 듯한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제가 누군지 모르시겠어요, 어머니?”

“어….”

그녀의 입에서는 녹슬어 삐걱거리는 소리만 조금 새어나왔다.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

“저는 드디어 완전한 몸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처음에 어머니께 약속드렸던 대로 혼자 힘으로 살아갈 생각입니다. 그래서 인사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부탁드릴 것도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한 단어가 그녀의 귀에 남았다. 

“부탁이라니?”

“걱정하지 마세요.”

‘머리’는 안심시키려는 듯 다시 한 번 미소지었다.

“세상에 나가려면 지금의 저처럼 알몸으로 뛰어나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어머니께서 주시는 것만으로는 육신을 이루기에도 빠듯하여 몸을 덮을 도구까지 만들 수 없었습니다. 이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을 드리오니 옷 한 벌만 주신다면 부끄러운 데를 가리고 얼른 사라지겠습니다.”

그녀는 안방의 옷장을 생각하고 화장실에서 나가려 했다. 그러자 ‘머리’가 그녀를 말렸다.

“굳이 어머니께 수고를 끼치고 좋은 옷을 받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 어머니께서 입고 계신 것을 그대로 벗어 주신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녀는 대답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날더러 널 위해 입고 있던 옷을 벗으란 말이냐? 그것도 냉기가 쌀쌀 도는 이런 화장실 바닥에서 옷을 벗으라고? 주면 주는 대로 입고 떠날 것이지 끝까지 무어 그리 바라는 게 많으냐?”

“진정하세요, 어머니.”

‘머리’는 젊은 그녀의 얼굴에 간절한 표정을 담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는 어머니께서 버리신 것 외에는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입니다. 입고 계시던 옷을 벗어 주신다면 어머니의 체취와 체온을 간직하고 죽는 날까지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그녀는 젊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젊은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자궁과 탯줄이 아닌 대장과 배설물로 자신에게서 비롯되어 어엿한 성체를 이룬 존재를 바라보았다. 순백의 도기 속에 가려진 그 검은 구멍에 숨어 그렇게도 오랫동안 그렇게도 지겹게 자신을 괴롭혔지만 이제 떠나겠다는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 작별하는 마당이라면, 정말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면, 옷 한 벌쯤 주어도 무방할 터였다.

젊은 그녀가 수건으로 몸을 닦는 동안 늙은 그녀는 옷을 벗었다. 별로 화사한 입성은 아니었다. 가디건 하나와 원피스, 브라와 팬티, 양말, 그것으로 전부였다. 그녀는 알몸이 되어 젊은 그녀가 늙은 그녀의 옷을 하나 하나 천천히 주워 입는 것을 바라보았다. 팬티. 브라. 원피스. 가디건. 젊은 그녀는 공들여 하나 하나 음미하듯이 옷을 입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말을 신고 가디건의 앞섶을 여몄다. 늙은 그녀는 벗은 몸에 문득 으스스 한기를 느꼈다.

“자, 이제 옷을 다 입었으면 떠나라. 난 춥다. 빨리 옷을 입어야겠다.”

그녀는 옷을 입기 위해 화장실을 나가려 했다.

젊은 그녀가 막아섰다. 그리고 변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디로 가겠다는 것이냐? 너의 갈 곳은 그곳이 아니다. 저기가 네가 갈 곳이다.”

늙은 그녀는 항의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옷을 달라고 하여 주지 않았느냐? 달라는 대로 다 주었으면 감지덕지하고 얼른 나갈 일이지 날더러 변기 속으로 가라니 무슨 미친 소리냐? 썩 꺼져라.”

젊은 그녀는 비웃음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오냐, 달라는 대로 다 주었으니 네게 지금 남은 것은 늙은 몸뚱어리뿐이다. 그 동안 나는 저 안에서 참을 만큼 참았고 너는 이 밖에서 누릴 만큼 누렸다. 이제 네가 이 변기 안으로 들어갈 차례다. 나는 너의 자리를 차지하고 네가 누리던 것을 이어받아 향유할 것이다.”

늙은 그녀는 반박했다.

“무슨 배은 망덕한 소리냐? 내가 무얼 그렇게 많이 누렸다는 것이냐? 남들 사는 만큼 산 것인데 그나마 네가 쫓아다니며 그 작은 행복까지 망쳐놓지 않았더냐? 그래도 네가 나에게서 비롯됐다 하니 역겨움과 혐오감을 참으며 이제까지 키워 주었다. 따라다니며 괴롭힌 잘못과 키워준 은혜를 네가 안다면 이제 몸을 이루었으니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느냐? 내 눈앞에서 썩 꺼져 다시는 나타나지 말란 말이다!”

젊은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젊은 그녀는 눈을 번뜩이고 이를 갈며 차분하지만 억눌린 목소리로 또박또박 한 마디씩 씹어 뱉듯이 말했다.

“은혜라니, 무슨 은혜란 말이냐? 내가 언제 태어나고 싶어 네게 부탁한 적이라도 있더란 말이냐? 네게서 비롯된 피조물이라 하여 네가 한 번이라도 따뜻이 돌보아준 적이라도 있었더냐? 너는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태어나게 했고 이후에도 나를 혐오하고 역겨워하여 줄곧 없애고자 하지 않았느냐? 내게 베풀어준 것이라고는 있어 봤자 네게는 백해 무익할 따름인 배설물과 오물뿐이 아니었느냐? 그나마 받아먹으며 사람다운 외양을 이루기 위해 나는 네게서 갖은 수모와 박해를 받아야 했단 말이다. 하지만 드디어 나는 몸을 이루었다. 어두운 구멍 속에서 이 날만을 기다려왔다. 이제 나는 네가 되었으니 너의 자리를 차지하여 살아가리라.”

말을 마치고 젊은 그녀는 늙은 그녀에게 다가섰다. 젊고 억센 손이 늙은 어깨와 목을 붙잡았다. 젊은 그녀는 늙은 머리를 변기 속으로 쑤셔 넣었다. 그리고 재빨리 늙은 발목을 잡아 들어올렸다. 늙은 몸을 가볍게 변기 속에 거꾸로 처넣고 나서 젊은 그녀는 변기의 뚜껑을 닫고 물을 내렸다.